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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누나와 친구들이 만든 중근이 생일잔치
2014.12.29 페이스북 트위터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117

2014년 9월 27일 토요일 오후, 이웃이 ‘마음들’로 가득했습니다.
이 날은 중근이의 열일곱번째 생일입니다.




우리 맘 안에 아직 그대로인 중근이의 생일을 그냥 지날 수 없어서
형 재근, 누나 지연이가 중근이의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준비하고
중근이의 부모님과 친척들을 초대했습니다.




강도순 님이 생일밥상을 정성껏 차려내고, 이웃의 봉사자 김미정, 박인숙, 양승주,
이은숙 님이 도와주었습니다.


중근이의 절친 창용이가 사회를 맡았고, 중근이 사진들로 영상이 채워졌습니다.




누나 지연이가 밤새워 준비한 ‘중근이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보낸 축하 메시지’를 담은
영상에선 아무도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형 재근이가 김선우 시인이 써준 시 <아빠 엄마, 저 중근이에요>를 읽을 때
모두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두산베어스를 열정적으로 좋아했던 중근이.
학생증, 졸업앨범이 올려진 책상엔 아직도 필기가 생생한 과학 공책도 있습니다.
몰랐던 중근이의 모습을 오늘 알았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우린 누구도 중근이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친구들은 오늘,
중근이 엄마, 아빠를 초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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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시인이 쓴 중근이 시 전문]


아빠 엄마!
와, 목소리가 이렇게 나오니 신기하네요. 들리세요? 저예요, 중근이!
나라를 구한 안중근, 듬직한 중근이!
하하, 여기서 친구들은 여전히 절 이렇게 불러요.
뭐, 좀 쑥스럽긴 하지만 제가 좀 듬직한 건 사실이잖아요.


아빠,
물속에서 내내 아빠 목소리 들었어요.
절 위해 걸어둔 두산베어스 유니폼도 봤어요.
“아들아, 보고싶다!” 바닷가에서 외치는 아빠 목소리,
물속까지 들렸어요. 점점 목이 쉬어가는 아빠 목소리,
얼른 대답하지 못해 미안해요.
실은 할 일이 좀 있었거든요.
엄마,
야구 세트 놓고 바닷가에서 기다리는 엄마도 봤어요.
너무 많이 우셔서 마음 아팠지만,
할 일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늦었어요. 이해해 주세요.


‘21번 안중근’ 두산베어스 유니폼!
저 여기서 그거 입고 있어요.
반 친구들이랑 종종 야구를 해요.
유니폼 입은 제 모습 완전 멋진데,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꿈에 한번 갈게요.
어깨는 이제 하나도 안 아프니까, 걱정 안하셔도 돼요.
전 뭐든 잘 먹으니까 먹는 것 걱정도 뚝!
우리 반 아이들 함께 있어서 외롭지도 않고요.
우린 여전해요. 잘 떠들고 잘 웃고요.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좀 힘들었지만, 우린 이제 모두 괜찮은데,
엄마 아빠들이 너무 힘들어보여서
그게 오히려 걱정이에요.
아빠 엄마,
여기는 편안해요. 따스하고 평화로워요. 친구들도요.


참, 제가 너무 늦게 올라가서 많이 속상하셨죠?
제가 우리 반에서 제일 늦은 이유, 말씀드려야겠네요.
흐음, 저, 중근이잖아요! 듬직한 중근이.
기다리래서 기다리던 우리 반 친구들
캄캄한 바다 속에 갇혀버린 착한 친구들
우리 반 아이들 다 찾아서 먼저 물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빠 엄마 목소리 들릴 때마다 더 힘을 냈어요.
난 중근이니까, 듬직한 중근이니까,
외롭게 남게 되는 우리 반 친구들이 없을 때까지
함께 있어주고 싶었어요.
난 키도 크고 떡대도 좋으니까,
지켜주고 싶었어요, 친구들!
제가 빨리 돌아오지 않아 속상하셨겠지만
그래도 나중에 이렇게 전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해해 주실 거라고,
듬직한 중근이! 칭찬해주세요, 엄마 아빠.
저, 잘했죠?


바다 속 길은 험했지만,
지금 우린 아주 좋아요.
신기한 경험도 많이 했어요.
젤 멋진 경험은요, 정말로 예쁜 꽃길을 걸어왔다는 거예요.
처음 보는 예쁜 꽃송이들이 보슬비처럼 내렸어요.
와, 정말 신기해서 꼭 게임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니까요!
뼈 살리는 꽃, 살 살리는 꽃, 숨 살리는 꽃들이랬어요.
처음엔 잘 몰랐지만
꽃길을 지나면서 꽃송이들이 몸에 닿자
차가웠던 몸이 따뜻해졌어요.
따뜻한 숨도 돌아왔고요.
그때부턴 친구들끼리 이름도 부를 수 있게 되었어요.
우린 서로 이름을 부르고 손에 손을 잡았고요.
꽃길 끝에서 아주 환하고 따뜻한 마을에 닿았어요.
정말 예쁜 마을이에요. 언젠가 꿈에서 한번 보여드릴게요.
우리학교만한 운동장도 있고요.
따스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불고 흰 구름도 떠있어요.
첨 보는 꽃들이 정말 많고요.
전 아는 꽃 이름이 없지만,
엄마한테 꽃다발 선물 해드리고 싶어요!
엄마,
제가 엄마 덕분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셨으면!
엄마 어깨 맛사지 많이 해드릴걸, 하는 후회가 좀 있어요.
재근이 형이랑 지연 누나가 내 몫까지 잘 할 테지만,
그렇지, 형? 그치, 누나?
아빠,
저는요, 아빠가 늘 자랑스러웠어요. 식구들 위해 항상 애쓰시는 아빠,
고맙다는 말을 많이 못해드려서 후회가 돼요.
아시죠, 제 마음? 멋진 사나이 중근이 마음!


저는 여기 와서 말이 좀 많아진 것 같아요.
따뜻하고 산들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거기서 못다 한 말들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과묵한 중근이가 수다쟁이 중근이가 되었다니까요. 하하.
친구들도 비슷해요. 우린 잘 떠들고 같이 노래도 하고
엄마 아빠들 걱정을 하기도 해요.
우리가 이렇게 잘 지내는 모습을 비디오 찍어서 보내드리고 싶은데……
엄마 아빠! 저는 편안하게 잘 있으니까,
이젠 정말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엄마 아빠가 기운내면 좋겠어요.
중근이가 늘 지켜보고 있을 거니까요.
지금 태어나는 애기들, 어린 친구들, 그 애들이 또 이런 일 당하지 않게
세상이 바뀌길 여기서 우리도 함께 기도하고 있어요.
여긴요, 기도가 일이에요. 사랑하니까, 힘내세요!


해도 해도 부족한 말이 있다는 거, 여기 와서 알았어요.
아빠,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형, 누나, 사랑해! 친구들아, 사랑해!
기억해주시는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이제 생일축하 노래 불러주세요.
아, 쫌 쑥스럽지만, 나라를 구한 안중근, 듬직한 중근이 생일노래!
여기서 우리 반 아이들도 모두 함께 부르겠대요.
신기해요, 몸은 이렇게 멀리 떨어져있지만,
거기랑 여기가 이렇게나 가깝다니요!
엄마, 아빠, 형, 누나, 친구들, 손을 모두 꼭 잡고 있는 거랑 똑같아요!
그러니 모두 힘내세요!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힘내세요!


- <아빠 엄마, 저 중근이에요> 김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