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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이명수의 충분한 사람]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와 나눈 ‘PTSD 포켓북’ 같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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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1 [2014.05.05 제1009호]  

 

 

“슬픔 속으로 뛰어드세요”
 
[이명수의 충분한 사람] ‘거리의 의사’ 정혜신 박사와 나눈 ‘PTSD 포켓북’ 같은 인터뷰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두 느낄 죄의식, “함께 슬퍼하면 많이 슬프지 않아요”

 

 

 

 
 
≫ 정용일
 
지난번 인터뷰에서 ‘세 아이의 아빠. 훌륭한 옆지기를 둔 쌍차 해고자’라는 고동민의 담백하고 꽉 찬 프로필에 감탄했더니 인터뷰를 읽은 그가 꼭 ‘쌍차 복직’까지 첨가해서 완벽한 스펙이 되고 싶다는 메아리 같은 소망을 전해주었다. 무분별하고 폭력적인 해고의 후유증으로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25명이 목숨을 잃는 트라우마를 겪은 고동민의 말이라 더없이 와닿았다. 꼭 그리될 수밖에 없으리라.

한동안 고동민‘들’의 마음주치의였던 정혜신은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다. 지난 10여 년 조작간첩 피해자, 해고자, 광주 5·18 피해자 등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을 심리치유 한 실제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멀지 않은 미래의 꿈도 ‘거리의 의사’다.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이 남을 수도


그는 이번 세월호 트라우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에 한국전쟁과 맞먹는 상흔이 남을 거라고 단언했다. 지나친 예상 아니냐고 반박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우리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적 상황의 범주 안에 들어간 적이 없고 그에 따라 심리치유가 필요한 사람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제대로 알고 대처하지 못하면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자살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각개약진 사회가 시작된 것 이상으로 국민 인식에 엄청난 지각변동이 아무 대책 없이 시작될 거라고 했다. 체감상으로는 이미 충분히 수긍할 만했지만 세월호 트라우마의 어떤 요인들 때문에 그렇게 판단하는지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또 하나. 위급 상황에는 간단한 안전수칙을 숙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세월호 침몰 같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적 참사가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정리하고 싶었다. 그런 포켓북 같은 인터뷰였으면 좋겠단 생각에 처음으로 사람이 아니라 콘텐츠에 치중했다.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는 배우자란 개인적 인연을 밀쳐두고, 이번 참사로 자식을 잃은 친구가 곁에 있다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그런 심정으로 묻고 들었다.


-PTSD가 뭔가요.

=살다가 겪게 되는 스트레스 중에서도 인간이 통상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스트레스, 즉 재앙적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보이는 반응을 말합니다. 사람을 서로 죽이는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군인, 고문 생존자,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재난 현장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재앙적 스트레스지요.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에는 개인적인 차이가 거의 없어요. 남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잘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총에 맞으면 몸이 건강하든 아니든 차이가 없잖아요. 인간이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스트레스인 거죠.


-이번 세월호 참사는 PTSD에 해당하는 거죠.

=그럼요. 전형적인 PTSD죠. 생존자와 유족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파국적이고 재앙적인 상황인 거죠.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가 사람을 어떻게 파괴시키는 건가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갖는 공통적인 핵심 감정은 ‘죄의식’이에요. 내가 무언가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누군가가 죽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희생자의 죽음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거죠. 예를 들어 세월호 사건에서 갑판에 올라가 있다가 생존한 학생이 있어요. 그럼 같은 방에 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서 걔들이랑 같이 나오자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친구들이 죽었다고 믿어요. 또 어떤 아이는 전날 늦게까지 함께 놀았던 친구가 빠져나오지 못한 걸 나랑 놀다가 피곤한 것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3자가 보기엔 비합리적인 생각이지만 재난 현장에서 살아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런 식의 죄의식과 책임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유족들도 그래요. 몸살이 있었는데 수학여행을 보내지 말걸, 안산으로 이사만 오지 않았더라면, 그런 식으로 모든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평생 이 생각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삶이 일그러집니다. PTSD의 이런 턱없는 죄의식은 실제로 책임이 있어서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에요. 현장에 같이 있었다거나 부모·자식, 친한 친구, 교사·학생 사이처럼 희생자와 심리적으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터무니없는 죄의식의 크기도 함께 커지는 거죠.



시스템이 마비된 사회, 실제 죄를 지어


-물리적 거리와 관계가 없다는 거죠.

=네. 책임이 있어서 죄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라 희생자와 심리적으로 유대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만큼의 죄의식을 떠안는 겁니다.


-세월호의 무책임한 선장보다 내 죄가 더 크다고 느낄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심리적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렇게 되는 거죠.


-어떤 사건에서든 이런 재앙적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들은 예외 없이 죄의식을 갖게 된다고 했는데, 왜 그런가요.

=PTSD의 재앙적 레벨의 스트레스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그냥 내가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평상시에 100m를 10초에 돌파하는 사람과 20초에 도달하는 사람은 차이가 나지만, 거대한 해일이 밀려올 땐 그 차이가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불가항력적 상황인 거죠. 그런데 사람의 인지구조는 나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 일이 도대체 왜 나한테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어 해요. 설명하려고 해요. 해일이 덮쳐올 때 내가 조금 더 빨리 뛰었어야 했는데, 이런 식의 비합리적인 해석이라도 하게 되는 거죠. 해일에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이유를 찾아서 설명하게 돼요. 그중 제일 손쉽고 빠르게 보이는 것이 자기거든요.


-세월호 침몰 트라우마가 다른 경우와 달리 더 심각하다고 보는 이유는 뭔가요.

=첫째는 이번 세월호 참사가 다른 PTSD적 상황과 달리 국소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거죠. 일반적 PTSD는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라든지 재해 현장에 있었던 사람과 유가족 사이에서만 공유하는 국소적인 경험이죠. 그런데 세월호 사건에선 아이들이 수장되는 과정이 느린 화면으로 보듯 전국에 생중계된 거예요. 학살 현장이 실시간 생중계된 것과 다르지 않아요. 아이들이 그렇게 당하는 걸 속수무책 지켜봤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치명적인 균에 의해 피부가 감염됐다가 장기에 퍼져 염증이 생겨도 항생제를 쓰면 치료할 수는 있어요. 국소적이니까요. 그런데 균이 혈관을 타고 핏속으로 들어가면, 그게 패혈증인데요, 대부분 사망해요. 피를 통해서 균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다 뿌려지니까요. 그런데 세월호 재앙은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에요.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로요.


-두 번째 요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사고 수습의 과정과 관련이 있겠군요. 침몰 사고 이후 경악과 분노와 절망과 죄의식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입니다.

=네. 맞아요. PTSD가 사람을 붕괴시키는 핵심은 죄의식입니다. 그런데 이번 사고에서는 우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굉장히 많았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아서 그 많은 아이들이 죽은 거죠. PTSD를 겪으면 실제적인 책임이 없어도 그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 집요하게 따라다니는데 세월호 참사에선 PTSD적 죄의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씻을 수 없는 죄를 졌어요. 생명을 구하는 시스템이 마비된 이 복마전 같은 사회구조에 기여하지 않은 어른은 한 사람도 없잖아요.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거의 사이코패스적 무감각일 거예요.



혼자 죄의식을 안 느끼는 듯한 대통령


-지켜보는 사람조차 마음이 복잡하고 안정이 안 되는 게 다 이유가 있는 거로군요.

=하나의 상황에서 사람은 여러 가지 욕구를 가집니다. 그중 하나의 욕구가 해소되면 그다음 욕구의 충족 과정으로 넘어가죠. 충족된 욕구는 더 이상 욕구가 아니니까요. 그런데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는 우리 모두가 가진 욕구들이 충족된 게 하나도 없어요. 이래선 심리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도를 나갈 수 없어요. 분노만 해도 그래요. 책임 있는 사람이 ‘진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군가 맞아죽을 각오를 하더라도 분노를 흡수해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상황도 사람들의 감정도 한 발짝도 진도를 나갈 수 없어요.


-대한민국호의 선장을 자처하는 대통령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겠어요.

=핵심적이고 결정적이죠. 이 재앙을 최소한이나마 수습할 수 있는 첫 번째이자 마지막 사람은 대통령입니다. 먼저 사과를 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금부터 대통령이 나선다 해도 재앙의 극단성으로 봐서는 최소한의 수습일 뿐입니다. 그마저도 안 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어요. 실질적인 관계가 없으면서도 거의 모든 국민이 죄의식, 미안함을 느끼는 건 사고를 당한 부모에 대한 심리적 동질감, 연대감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통령 혼자 죄의식을 안 느끼는 것처럼 보여요. 누군가에게 화내고 혼내고 있잖아요. 지금의 고통과 연결된 정서적 끈이 존재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 같아요. 대통령이 나서서 이런 끔찍하고 무기력한 마음들을 흡수해주지 않으면 칼에 찔리는 것 같은 이런 상황은 계속될 겁니다. 그러면 우린 끝내 가라앉을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 그랬더군요. 배를 침몰시킨 건 선장이지만 ‘참사’는 정부가 만들었다고요.

=네. 세월호 참사는 사망자 수가 많아서만 참사가 아닙니다. 선장이 큰 죄를 졌지만 그건 어찌 보면 한 개인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한 사람 때문에 그랬다면 그건 국소적인 문제예요. 그렇지만 당연히 우리를 지켜줄 거라 생각했던 국가가 이런 무능, 무책임, 사악함마저 느끼게 하면 집단우울증이 생길 수밖에요. PTSD에는 1차, 2차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배가 침몰된 게 1차 트라우마라면 정부의 무책임한 대응은 2차 트라우마예요. 그런데 PTSD에서 결정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2차 트라우마입니다. 정신의학의 정설이에요. 이번에 우리는 정부의 반응을 보면서 돌이킬 수 없는 2차 트라우마를 받았습니다. 국소적 염증이 아니라 패혈증에 빠진 겁니다. 단언컨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겁니다. 사회의 전 영역에서요.



최소한 10년은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PTSD는 치료가 되나요.

=죽을힘을 다해 치료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다. 유족이나 생존자들은 지금도 위험하지만 몇 년 지난 뒤에도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다양한 형태로 개인과 가족이 해체될 수도 있고요. 끈질기게 지켜보고 치료해야 합니다.



 
 
≫ 정혜신 박사는 “세월호 재앙은 균이 혈관을 타고 들어간 형국이에요. 우리 사회 전체가 심리적 죽음에 이를 정도로요”라고 트라우마의 심각성을 말했다. 지난 4월22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김명진
 

-기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치료에 얼마나 깊이 개입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생존자와 유족들은 최소한 2~3년 정도의 지속적인 치유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치유가 필요한 대상 집단이 넓고 이 트라우마를 정확하고 입체적으로 해결하려면 사회적인 치유 시스템도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10년은 지속적으로 매달려야 한다고 봅니다. 1년 동안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다고 해결될 일이 전혀 아닌 거죠.


-기본적으로 오랜 시간이 필요하군요.

=PTSD의 치료 과정이 본래 그래요. 한동안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잠도 못 자고, 음식도 못 넘기고, 사망자 통지를 받았던 순간들, 바다에서 파도가 치고 그랬던 순간들이 계속 떠오르죠. 이런 게 스테이지1의 증상들이에요. 그런데 계속 그러면 소진돼서 살 수가 없으니까 생존자나 유족들도 잊기 위해 뭔가에 몰두하기 시작해요. 왜냐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너무 힘드니까 몸을 학대한다 할 정도로 일을 한다든가 다른 걸 한다든가 뭔가에 몰입하는 거죠. 아이들 중에는 딴생각 안 하려고 공부만 파는 애도 있을 거예요. 이런 게 스테이지2의 증상들인데 이것도 사람이 살기 위한 심리 방어기제죠. 그런데 이런 시기가 되면 자기도 그렇고 주위 사람도 그렇고 상황을 잘 극복한 증거로 받아들이면서 안심하고 흡족해해요. PTSD 스테이지2에 나타나는 증상임에도요. 뭔가에 강하게 몰입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불안이나 두려움, 공포를 잊는 거죠. 좋아졌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몰입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소한 계기에도 툭 끊어져요. 바이올린 현을 연주할 때 팽팽하게 조였다가 연주가 끝나면 느슨하게 풀어놓잖아요. 사람도 그렇죠. 조였다 풀어놓았다 이렇게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데 집요하게 따라붙는 공포와 불안, 죄의식을 외면하느라 극도의 긴장 상태를 수년 동안 팽팽하게 유지하니 어느 순간 끊어질 수밖에요. 그러니까 잘 지내는 것도 잘 지내는 것이 아닌 거죠. 이런 메커니즘을 잘 알고 그들을 케어하면서 정부 예산이 쓰여야 합니다. 안산에 세월호 참사를 집중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PTSD센터를 만들어 10년간 활동하게 했으면 해요. 세월호 피해자와 피해 영역들을 샅샅이 찾아내서 끝까지 치유하고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도 우리도 다 같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함께 있어야


-그러자면 치유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요.

=네. 심리상담만이 치유적 활동은 아니거든요. PTSD의 본질도 그렇고 사람 마음의 본질도 그렇고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하는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2차, 3차 외상을 줄 수 있어요. 이번 세월호 트라우마의 경우엔 제일 책임 있는 주체가 국가니까 공무원, 국가기관이 피해자들을 대할 때 지켜야 하는 준칙을 제대로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 시급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피해자를 가장 많이 접하고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는데, 피해자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상처를 치명적으로 덧나게 하고 결국 자기네들도 곤경에 빠지고 있어요. 그들의 업무에 심리적 개념을 탑재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산 단원고에 100여 명의 소아청소년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전문가들이 투입돼 학생들을 케어하고 있다더군요.

=꼭 필요하고 시급한 일인데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죠. 지금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아이들을 학교에 모아서 같이 얘기해야 한다고 하죠. 혼자 있다보면 나만 문제라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속마음을 꺼내놓고 함께 얘기하다보면 이게 나만 그런 게 아님을 알게 돼요. 집단적인 현상이라는 걸 서로 확인하게 되는 거죠. 내가 못나서, 내가 뭘 잘 못해서, 책임이 있어서 이런 게 아니라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다 느끼는 감정이구나. 나만 이런 게 아니었구나. 이것이 확인되면 자기와 자기 아닌 것 사이에 경계가 생기고 방어막이 생겨서 자기를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숨어 있으면 안 되고 다 나와서 함께 있어야 해요. 일이 수습되면 유족들도 가능한 한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생존자들 말고 실종자 가족들처럼 아직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저 같은 심리전문가들이 현장에 가서 상담만 하는 게 심리적 개입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지금 필요한 심리적 개입이라는 것은 이 상황을 빠르게 흡수해주고 또 정리해주고 설명해주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이번 사고로 아이가 실종된 가족을 보면 넋이 나간 엄마를 아빠가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가족이 많아요. 함께 중환자실에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누군가는 보호자가 되고 누군가는 환자가 되는 거죠. 모든 식구가 거의 똑같이 힘들다는 것을 서로 인지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야 결국 모두가 살 수 있게 돼요. 예를 들어 세 식구가 남았다면 이제부터 우리가 함께 헤쳐나가야 하는 동반자다, 지금 나만 아프고 나만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 똑같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내 고통도 조금은 객관화될 수 있거든요. 서로 간의 상처나 갈등도 막을 수 있고요. 또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자원활동가들에게 피해자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심리적 개념을 탑재시키는 일도 중요해요. 그런 게 심리적 개입이죠.



우선 분향소부터 찾으세요


인터뷰 다음날 정혜신은 진도로 내려갔다. 팽목항 신원확인소에서 실종됐던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잠든 듯 엄마와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내내 마음을 포갰다고 했다. 그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고 했다. 국민적 트라우마는 어떻게 치유하면 좋겠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심각한 신경증이 있지 않다면 이 슬픔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길 권합니다. 우선 분향소부터 찾으시길요. 함께 슬퍼할 수 있으면 많이 슬프지 않습니다. 많이 힘들다면 혼자 슬퍼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트라우마 심리치유 전문가 정혜신의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왠지 위안이 되는 느낌이기도 하고, 지금은 내가 해볼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알지 못하겠다.

오래전 아이를 잃은 시인이 그랬다.


“저녁 밥상에 애기가 없다/ 애가 앉던 방석에 한 쌍의 은수저/ 은수저 끝에 눈물이 고인다/ …/ 맨발 벗은 애기가 울면서 간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김광균 ‘은수저’


이런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 위로하나. 진심을 다한 눈물과 기도가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지금이 그렇다.

 


심리기획자 이명수,녹취 전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