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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세월호 유족들의 '치유공간 이웃' 정혜신 씨 "팽목항에 안 갔다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2017.05.24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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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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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이다. 꽃이 흐드러진 때 믿고싶지 않은 참사를 떠올리는 것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이다. ‘잊지 말자’ 스스로를 다그치면서도 ‘세월호’란 단어를 두려워하는,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손 내밀고 싶지만 자꾸만 죄책감이 드는 모두가 이 참사의 피해자다. 


 


전 사회를 할퀴고 간 깊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 나가야 하는지를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에게 물었다. 고문피해자와 국가폭력피해자의 심리치료에 앞장서온 정씨는 2014년 참사 후 경기도 안산으로 이주해 남편인 심리기획자 이명수씨와 함께 ‘치유공간 이웃’을 열었다. 유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병원 상담실이 아니라 ‘마을회관’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에서다. ‘이웃’에서는 심리상담 뿐만 아니라 유가족의 일상을 보듬는 다양한 일을 한다.


‘이웃치유자’로 불리는 자원봉사자들이 매일 유가족을 위한 밥을 정성껏 짓고 함께 먹는다고 한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만난 정씨는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서로 확인하는 것”을 전 사회적 트라우마(심리적 내상) 치유의 근본으로 꼽았다. “팽목항에 안 갔다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대신 노란리본을 달아 주세요. 죽으려고 생각했다가 지하철에서 노란리본을 보고 마음을 돌리는 게 유족의 마음입니다.” 


“슬픔과 고통에는 등급이 없다”는 게 정씨의 지론이다. 오랜시간 지켜본 생존자, 희생자 유가족부터 구조 참여자, 현장 자원봉사자 그리고 충격을 받은 시민들은 층층이 다른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다. 감당이 안 되는 고통 앞에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의 고통을 ‘차별’하기도 했다. “‘아이를 잃고 고통받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뭐가 힘들다고 징징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하지만 누구의 아픔 때문에 나의 아픔이 홀대돼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내 고통도 알아주고 존중해야 오히려 피해자를 끝까지 도울 수가 있습니다.” 다음은 정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슬픔에는 등급이 없다”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희생자 유족과 구조활동을 한 잠수사 등을 치료하느라 미처 이 친구들을 돌보지 못했습니다. 최근 3년만에 처음으로 이 아이들과 치유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희생학생 친구들의 내상이 생각보다 굉장히 심각합니다. 이 아이들은 그동안 본인들이 세월호 피해자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슬퍼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슬픈 건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자매들이지 자기네는 슬퍼해선 안 된다, 혹은 자격이 없다 이런 생각 때문에 슬픔을 눌러온 것이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로 만들 계획입니다. 친구들의 육성을 다음 스토리펀딩으로도 전하고 있고요.”


-‘내가 슬퍼해도 될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아이들에게 ‘슬픔에는 등급이 없다’고 자주 얘기합니다. 이건 지금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봐야할 문제인 것 같아요. 유족을 위해 굉장히 헌신적으로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이 분들이 힘들 때 자기 탓을 하고 자책을 합니다. ‘아이를 잃은 피해자들도 있는데, 내가 뭐가 힘들다고 이렇게 징징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유족을 돕다보면 바쁘고, 힘들기도 하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 때문에 집안일을 덜 돌보다가 가정에서 아이하고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그럴 때 ‘아이를 잃고 지금 이렇게 버티는 사람도 있는데…’ 하면서 내 아픔에는 눈길을 안 주려고 하는 거죠.”


 


-희생된 학생들의 형제자매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우리 엄마가 너무 힘드니까 내가 힘든 것은 견뎌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엄마아빠를 위로를 해야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죠. 모두들 힘들어 하는 스스로를 용납을 잘 안 하는 거예요. 자식을 잃은 사람도 있는데, 유가족도 있는데, 이까짓 건 아무것도 아닌데. 이러면서 내 고통에 별로 공감을 안해주는, 심지어 유가족 입장에서는 ‘미수습자 가족도 있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치유를 미루거나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치유가 필요한 상황인 것 같네요. 


“층층이 다 죄책감을 느끼고, 상대적으로 내 슬픔을 뒤로 미루고…슬픔의 결에도 여러 겹이 있어요. 모든 슬픔과 고통은 주관적이고 개별적인 것이에요. 그것을 우리가 잘 알고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누구의 아픔 때문에 내 아픔이 홀대되거나 공감을 스스로한테도 잘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래선 안 되는 거죠. 둘은 별개인 거죠. 그걸 알아야 합니다.” 


 


-3주기를 맞는 것이 두렵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일반 시민들 중에서도 죄의식이나 무기력,무력감이나 죄책감 때문에 관련 언론 보도도 잘 못 보겠다는 분들이 많아요. 세월호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내용을 접하면 갑자기 ‘울컥’ 하고 눈물이 나거나 한다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이 있거든요. 그야말로 국민적인 트라우마죠.”


 


■ “세월호를 들어올린 66개 중 1개는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의 힘”


-‘기억하자, 잊지말자’ 생각하면서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게 두려우니까요.


 


“회피하고 싶을 만큼 괴롭다는 것은 공감의 신호입니다. 박근혜나 김기춘이 세월호 사건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요. 가해자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공감능력이 있는일반인들이 그걸 느끼는 거죠. 희생자와 직접 관련 있는 것도 아닌데…. 이런 분들이 사실은 아픔에 가장 깊이 그리고 정확하게 공감하고 있는 겁니다. 이 공감대의 힘이 세월호를 들어 올렸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를 깊은 바다에서 들어올린 와이어가 66개였다고 하죠. 저는 그 중에서 1개정도는 이 ‘무력감과 죄의식의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진상 규명이 치유의 기본 전제라고 말했는데요. 


“치유란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에요. 단원고 학생 유가족에게 치유는 아이와 심리적으로 이별하는 과정인 거죠. 그런데 내 아이가 지금 내 곁에 없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으니 상실을 인정할 수조차 없어요. 왜 이렇게 됐는지에 모든 에너지가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박근혜가 구속됐든 어쨌든,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때까지 치유는 시작되지 않은 거죠. 이유를 알아야 그래야 그 때부터 ‘아, 내 아이가 없구나. 이렇게 된 거구나’ 생각하면서 온전한 치유가 시작될 수 있어요.” 


 


-참사 직후 정부에서 안산 등지에 트라우마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재난에서 국가가 치유를 위해 예산을 투입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치유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것이죠. 광주 5·18 피해자들을 위한 트라우마센터가 생기는데 3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참사 초기부터 국가가 치유를 위해 책임있는 조처를 취한 것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죠. 형식은 갖추었으니 내용 면에서도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껏 전문가들이 트라우마 현장에 구조적·조직적으로 나선 적이 없었으니까요.”


 


-민간 치유센터를 운영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은 없는지요. 


“초기 2년간 자리를 잡는 데 아름다운재단에서 지원을 받았고, 이후에는 십시일반 기부를 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예산의 대부분은 밥값이예요. ‘치유 밥상’이라고 해서 정성껏, 정말 좋은 재료로 따뜻한 밥상을 만드는 것이 치유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사람이 필요한 일입니다. ‘이웃치유자’라고 부르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을 맡고 있어요.”


 


-‘치유는 전문가의 몫이 아니다, 이웃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해왔는데요.


“이웃치유자의 95% 이상이 주부들입니다. 여기 와서 하는 것은 엄마들하고 같이 이야기 듣다가 눈물 흘리고, 그리고 밥을 해 주고 설거지하고 공간을 청소하고. 그 공간을 따뜻한 공간으로 엄마들이 아주 편안하게 마음껏 울면서 같이 지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들을 해요. 그게 치유에 어마어마한 힘이 있어요.” 


 


-정신과에 찾아가서 상담을 받는 그런 개념이 아니군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직장도 다니고, 가끔은 친구들도 만나며 사는데 상사와 큰 갈등이 있다, 아니면 부모하고 너무 갈등의 골이 깊다든지, 그렇다면 퇴근한 다음에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거나 전문적인 도움을 받죠. 트라우마 피해자는 다릅니다. 일상이 다 붕괴된 사람을 말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식을 잃었는데 밥도 먹을 수가 없고 ‘내가 예전엔 숨을 어떻게 쉬었지?’ 이런 것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면 ‘내가 어떻게 움직였었지?’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직장을 다니던 사람들이 직장을 못 다니고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학교에 못 다니고. 일상이 그냥 다 깨지는 거예요.” 


 


-일상의 복원이 치유의 목표라고 하셨는데요. 


“그러니까 일상의 복원이란, 이런 사람들한테 그냥 ‘일주일에 한 번 와서 상담하세요’ 하고 의사가 상담실에 앉아서 만나는 걸로 될 수 있는 게 아녜요. 일상의 모든 분야 삶의 모든 부분이 다 붕괴된 상황이니까. 전쟁터에 비유하자면 이 상황은 후방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야전병원에서 모든 일을 같이 할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부상자들이 막 실려오는데 흙은 날리고 어디서 천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수술도 해야되고, 갑자기 수혈을 해야되고, 트라우마현장에서의 치유란 건 그런 거예요. 폭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의 치유. 옆에서 밥 끓여줄 사람도 필요하고 먼지 막아줄 사람도 필요하고, 옆에 가서 부상자를 돌봐주고 물도 먹이고 그럴 사람도 필요하고요. 고급스러운 상담을 받는다고 치유할 수 있는 한가한 상황이 아닌 거예요. 야전이고 전쟁터니까.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웃이 다 같이 나서야 해요.” 


 


-희생자 유족들은 원래의 인간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요.


“엄마들 중에는 지금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가족과의 관계가 거의 다 끊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이제 좀 그만하지. 빨리 정신차리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와야지.’ 식구들도 그런 얘기를 할 수가 있죠. 잘 모르니까, 그게 도움이 되는 위로나 충고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다 주로 유가족들끼리 만나게 되는 거예요. 정말 비극적인 것은, 같은 심정의 사람들이 많으니 위로도 되지만 한편 이런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잖아요.” 


 


-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서로 보듬는 게 도움이 되나요. 


■ “팽목항에 안 왔다고 미안해하지 마세요” 


 


“엄마들은 아이 얘기가 가장 행복하고 그 얘기 할 때만 생기가 있어요. 근데 그 심정을 아는 게 엄마들끼리인 거죠. 이 엄마들은 아이 얘기하는 것이 그렇게 좋고 또 하고 싶고, 내 아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얼마나 상냥했는지 사랑스러웠는지 내가 아이한테 마음 아프고 잘못한 게 뭔지 이런 것들을 끝도없이 얘기하고 싶어 해요. 그걸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얘길 잘 못 듣죠. 감당도 안 되고. 혹시 그 아이 얘기를 물어보는 것이 엄마한테도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해서 그 아이 이름조차 꺼내지 못하고. 식구들끼리 얘기를 해도 조카들 얘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이 엄마 얘기 할 때쯤 되면 사람들이 화제를 돌리죠. 아이 얘기 물어봤다가 더 상처가 되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하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반대예요. 서로 앉아서 얘기할 때 보면 꼭 아이가 살아돌아온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울 수 있겠습니다. 


 


“어쩌다 웃으면 ‘이젠 3년이 지났으니 살 만 한가보다’ ‘보상금을 많이 받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해요. 유가족들이 좀 웃다가도 언제 그랬냐는듯 토해내듯 울고 그럽니다. 그런 상황인 건데 사람들은 이런 걸 이해 못하니 나가서 웃는 것도 자유롭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을 의식하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되는지 늘 긴장이 되고 그렇죠. 맨날 징징거리거나 우는 모습 보여주기 싫잖아요, 사람이니까. 그런 표정 안 지으려 애써 노력하다 나중에 굉장히 이상한 소리를 듣거나 이런 경우가 많아요. 자기들끼리 모이는 것이 편안해서 많이 그렇게 모이고 있어요. 숨통이 트이는 시간인 거죠.” 


-이런 고통을 외면하고 ‘교통사고다’ ‘잊어버려야한다’ 말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요.


 


“사람을 주목하지 않으니까. 세월호를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려 하는데 그 이전에 이 것은 아이들 생떼같은 목숨을 잃은 것이고 아이가 내 자식일 수도 조카일 수도 친구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사람의 문제로 보지 못해서 그렇게 되는 거죠.”


-세월호를 소재로 대화하다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일도 많은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 이후에 ‘세월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인간관계의 리트머스지가 됐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죠. 막말을 하거나 이상한 소리를 하면 관계를 끊어버리고.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 관계가 정리됐다’, 그런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해요. 상처가 되니까. 그리고 그런 상황을 용납할 수 없으니까. 이건 진짜 국민적인 트라우마인 거죠.” 


-생존자과 유가족들에게 손 내밀고 싶지만 미안해서, 혹은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말 걸고 싶지만 웃으면 상처를 줄까, 울면 부담이 될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구요. 그 마음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유가족들도 다 알아요. ‘나는 진도에도 못 갔다, 팽목항도 못 갔다, 목포신항에도 못 가 봤다’, 다 괜찮습니다. 꼭 오거나 말 걸지 않아도 됩니다. 리본을 달아 주면 돼요. 그것이 유족들에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됩니다. 엄마들이 어디 갔다가 노란 리본을 보면 ‘아, 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지, 내가 모르는 곳에 내가 모르는 사람 중에.’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욕하거나 망언하는 사람도 있지만 ‘눈에 안 보이는, 응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더 많지’라는 것을 노란 리본을 통해 확인해요. 리본을 달고 다니는 분들은 잘 모르겠지만 유가족에겐 어마어마한 힘이 돼요. 버티는 힘이 되는 거예요.” 


-치유를 위해 앞으로 어떤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까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해 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큰 기관이 만들어지고 상담을 받는다고 좋아지는 것은 한계가 있어요. 유족들은 비난도 너무 많이 받았고 일련의 일 때문에 ‘이 사람과 이 세상을 다 못 믿겠다’는 불신이 너무 큰 상태라,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야’라는 걸 확인하는 게 치유의 근원적인 기반이 됩니다. 이 슬픔과 고통, 상처를 사람들이 이해해 주는구나, 하고요. 그런 사람들과 사는 세상에서는 이 사람들이 뭔가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게 전혀 안 돼 상처가 덧나는 거예요.”


■ “죽어야겠다 생각했던 유족, 전철에서 가방에 노란리본을 단 사람을 보고 마음을 접어”


 


-2차 트라우마가 심각한 상태인가요. 


“아이를 잃은 것을 갑자기 뼈가 부러진 데 비유한다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겪고 있는 상처는 골절 중에서도 단순골절이 아니라 복합골절이라 볼 수 있어요. 골절이 됐으니 깁스하고 누워있어야 되었는데, 더러운 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돼 부러진 뼈가 근육도 찌르고 혈관도 찌르고. 그러다 감염돼 패혈증이 오고. 이제 생명 위독한 상태까지 가는 것이죠. 살다보면 자녀를 잃는 일이 있습니다. 애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유가족 비난과 조롱같은 상식적으로 상상하지도 못했던 2차 가해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몰고가는 게 지금 유족을 둘러싼 우리사회 상황인 거예요.”


 


-치유공간 ‘이웃’의 활동을 살펴보면 시를 같이 쓴 후 낭송하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과 같은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도 큰 것 같습니다. 



예술 자체가 갖는 치유의 힘이 참 커요. 요즘 더 깊이 느낍니다. 그런데, 함께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주는 치유의 힘은 더 큽니다.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예술가들은 예술활동을 하면서 드러내는 것이고요. 나는 밥을 지을 수 있다, 그러면 그 재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고요. 청소를 하든 시를 쓰든 각각의 방식으로요. 저도 마찬가지로 상담을 할 수 있으니 그걸 하는 것이고요. 공감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치유의 근본입니다. 정말 이제 죽어야겠다 생각했던 유가족이 전철에서 가방에 노란리본을 단 사람을 보고 그 마음을 접어요. 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그 자체가 치유인 거예요. 이건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인 거죠. 시민들이 이미 그런 의미가 되어 주고 계신다는 걸 유가족을 지켜보며 느낍니다.”


경향신문 기사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202&artid=20170413161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