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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쏟아지는 독설에 유가족 매일 비수에 찔리고 있다
2019.01.07 페이스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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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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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등록 : 2014.09.09 20:01 / 수정 : 2014.09.15 10:52) 




사회   “쏟아지는 독설에 유가족 매일 비수에 찔리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5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세월호 참사 피해자와 가족들의 사회적 치유를 시작할 치유공간 ‘이웃’에서 앞으로 할 일과 그동안 느꼈던 소회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씨 왼쪽에 놓인 김선두 화백의 그림 <별을 보여드립니다>는 세월호 참사로 짧은 삶을 마감하고 별이 된 학생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안산/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세월호 유족 치유 공간 ‘이웃’ 11일 문 여는 정혜신 전문의
“애도 과정 가지려는 유족을 계속 걷어찼어요, 국가가”

 

“세월호 쓰나미는 지금도 계속 덮치는 상황입니다.” 

세월호 참사 뒤 146일째인 지난 8일 첫 추석을 맞은 숨진 단원고 학생 가족들은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가족 합동기림상’을 차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표류하면서 유가족에게 ‘합동 차례’는 기약이 없다. 전남 진도에서, 안산에서 그리고 서울 청와대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 이들 유가족들을 대면하고 치료해온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52)씨는 “이분들은 애도의 시간도 갖지 못했고, 치유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11일 안산에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사회적 치유를 시작할 치유공간 ‘이웃’의 문을 여는 정씨를 지난 5일 <한겨레> 기자가 만났다. 그는 자녀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느끼기도 전에 유가족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애도의 시작’도 못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꽉 막힌 상황을 한마디로 “처참하다”고 했다.

“주변에 누가 죽었다고 하면 이웃으로서 해야 하는 아주 상식적인 과정이 있잖아요.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일상적 도리가 있는데 우리는 이웃들도, 사회도, 국가도 최소한의 도리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애도의 과정을 가지려는 유가족들을 발로 계속 걷어찼어요. 방해하고 적극적으로 딴지 걸고 넘어지게 했고, 국가가 그러고 있어요.”

정씨는 “유가족들의 감정은 우선 지금 아이의 일상을 떠올리면 무서움과 공포가 너무 커요.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다 더 못 보겠구나 하는 것을 알 때 그 현실은 공포죠. 또 하나는 슬픔보다는 분노를 어떻게 할 줄 몰라요. 이유도 모른 채 300여명의 자식들이 억울하게 수장을 당했는데 당연히 원인을 밝혀주어야 할 국가가 그 의무를 외면하고 있어요. 그래서 분노를 어찌할 줄 모르고 팔짝팔짝 뛰고 있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고문 피해자와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들의 가족 25명이 자살했을 때 경기도 평택에 ‘와락’을 만들어 심리 치료를 벌였던 그는 세월호 참사를 고문과 쌍용차에 견줘 “아직도 진행중인 쓰나미”라고 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났을 때는 2년이 지난 상황이었죠. 이미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가고 폐허가 된 땅에서 망연자실한 사람들과 만났다면, 세월호 쓰나미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그가 접한 유가족들은 “지금 병원에서 요양하거나 집에 있는 게 아니라 피를 철철 흘리는 상태에서 전국을 다녀요. 그러다 거리에서, 경찰 진압 상황에서 절망감과 무력감을 느끼죠. 국가가 이랬구나, 내가 살던 나라가 이랬구나 하는 것에 대한 절망감을 순간순간 경험합니다”라고 했다.  

 

진상 규명이 치유 첫 단추인데 
정부는 최소한의 도리조차 안 해 
유족들 일상 복귀 당장 힘들겠지만 
지칠 때 쉴 수 있는 충전소 될 것
 

 

정씨는 이런 상황을 상처난 피부에 비유했다. “피부로 치면 (유가족들의 상처는) 다 벗겨진 상처죠. 먼지만 스쳐도, 바람만 닿아도 소스라쳐요.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우리 사회가 독설들을 벗겨진 상처에 왕소금처럼 뿌리는 거예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유가족들은 상처받고, 매일매일 던지는 비수에 찔리고 있으니 처참할 수밖에요….” 

 

 

 
하늘로 띄운 ‘진실의 배’ 한가위인 8일 오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과 농성자들이 소망을 적은 ‘진실의 배’를 하늘로 띄우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세월호 때문에 장사가 안되고 경기가 안 좋다’, ‘유가족이 양보하라’는 주장에 정씨는 “그런 요구는 유가족에게 할 게 아니라 정부에 따져 물어야 하는 겁니다. 왜 정부가 이 중요한 일을 해결 안해서 유족에게 슬픔을, 일반 국민에겐 경기 걱정을 하게 하느냐고 정부에 따져야죠. 유가족들에게 그 얘길 하는 건 번지수가 잘못된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유가족은 물론 우리 사회의 치유와 정상적 애도 과정을 위해서라도 “진상 규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교과서적으로 사회적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상황 수습과 원인 규명, 치유를 나눠 하는데 우리는 국가가 원인 규명을 회피하는 바람에 이것이 혼재된 상황”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우리 사회와 정부가 진상 규명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를 외면하면서 유가족들의 정상적 애도는 물론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정씨는 “지금은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위해 노숙하고, 아이들을 잃은 슬픔을 짊어지고 가면서 거의 소진과 탈진 상태입니다. 진상 규명을 통해 유가족들이 아이들과 이별하고, 그 슬픔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치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6일 오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울 광화문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과 자유청년연합 소속 대학생들이 식사하는 행위극을 벌이려고 접근하다 경찰이 제지하자 교보문고 앞 인도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국가는 책임을 외면하고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처절한 외침이 조롱받는 가운데 정씨는 11일 안산시 단원구 선부로 253 홍원빌딩 3층에 치유공간 ‘이웃’을 연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에서 안산으로 아예 거처를 옮긴 뒤 심리기획자인 이명수(56)씨와 함께 추진해온 ‘이웃’에는 국내외 수많은 이웃들의 손길이 어우러졌다.

공간 마련은 아름다운재단이 힘을 보탰고 안산지역 주부들은 옥상 텃밭 관리단을 꾸렸고 한복전문가 이효재씨가 식기를, 김선두 화백이 그림을 맡았으며, 정현아씨 등 건축가들이 공간 디자인에 무료로 참여했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아요’라는 간절한 40대 주부를 비롯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달라’는 재미동포 여성들 등 국외에서도 참여의 손길이 이어졌다.

경남 창원의 한 50대 남성은 ‘매주 금요일 유가족들의 마사지를 돕겠다’고 나섰고 유가족들의 한방치료를 위해 한의사 100여명이 참여하는 등 수백명의 자원봉사자가 이웃이 될 채비를 마쳤다. ‘이웃’의 이명수 대표는 “치유는 상처난 것을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죠. 그분들의 예전 일상의 복원이 치유입니다. 마을회관처럼 유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밥도 먹고 다독이고 어깨동무하고 그래서 치유된 사람이 다시 치유자로 나서는 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각박한 현실에서 ‘이웃’은 당장은 거리로 나선 유가족들의 전진기지가 될 듯하다. 정씨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쓰는 유가족들이 지치면 쉬고, 부상당하면 치료하고, 허기도 면하고 그렇게 해서 다시 본인들이 가고자 하는, 진상 규명을 위해 최소한의 심리적, 일상적 충전을 하실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안산/홍용덕 기자 ydh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