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칼럼 :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응답하라, 제발 응답하라
2019.01.07 페이스북 트위터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2684

한겨레(등록 : 2014.10.05 19:59 / 수정 : 2014.10.06 08:46) 

 

 

사설.칼럼

칼럼

응답하라, 제발 응답하라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차갑게 마른 동풍은 사정없이 방파제를 때리며 타고 넘었다. 난간에 묶인 리본들은 하늘로 솟구치며 애절하게 떨었다. 리본 사이사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얼굴이 담긴 초롱들도 함께 몸부림쳤다.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허다윤 황지현 학생, 고창석 양승진 교사, 일반인 승객 이영숙씨,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시간은 벌써 밤 1시, 음력 초열흘 상현의 달은 남서쪽 바다 위에 걸렸다. 문화제도 끝나고 ‘기다림의 버스’도 떠나야 할 시간, 평화의나무합창단의 마지막 노래가 밤바다 위로 퍼졌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 먼저 간 아이들, 그들과 함께 떠난 어른들의 간절한 소망과도 같은 노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였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세월호 참사 171일째인 3일 저녁 실종자 10명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길 기원하는 ‘기다림의 버스’ 행사 참가자들이 노란 리본 모양이 그려진 진도 팽목항 등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진도/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팝페라 가수 임형주가 이 노래를 희생자들에게 헌정했을 때만 해도, 온 국민은 가슴을 쥐어뜯고 있었다. 한순간에 침묵해버린 그 많은 아이들의 웃음과 재잘거림, 물거품처럼 흩어져버린 그 꿈과 희망을 기억하며 고통스러워했다. 숨쉬는 것조차 괴로웠고, 미안했다. 밥을 삼키기도 힘들었으며, 마시던 물은 왈칵 눈물로 쏟아졌다. 기억하겠다, 함께하마, 지켜주마, 그렇게 외치며 대한민국은 잠들지 못했다. 그런 이들을 먼저 간 이들은 오히려 이렇게 위로했다.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

그로부터 173일이 지났다. 아주 길고 오랜 시간이었지만 변한 것은 없다. 연민의 화장이 지워지고, 애도의 위장이 걷혔을 뿐이다. 대통령의 길고 긴 눈물 줄기는 독한 저주와 험담으로 바뀌었고, 정부의 잊지 않겠다던 맹서는 조롱으로 변했다. 경기침체마저 유가족 탓으로 돌렸고, 일부 유가족의 실수를 빌미 삼아 유가족들을 무도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감옥에 가두려 했다. 슬픔과 고통과 속죄로 위장했던 그들의 본색이란 그런 것이었다.

“어떤 엄마가 ‘살아낼 자신이 없다. 사실은 매일 죽을 생각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참 힘드네요.” “모든 유가족분들이 점점 힘들어지면서…마찬가지인가 봐요.” “몸은 힘든데 잠은 쉽게 오지 않네요.” 고 김동혁군의 어머니 김성실씨가 지난달 29일 새벽 다른 유가족과 나눈 카톡 대화다. 잠들지 못하는 나날들, 그들은 이렇게 호소하고 있었다. “함께해 주시는 모든 분들, 부디 끝까지 잡은 손 놓지 말아 주세요. 너무 두렵습니다.”

전국 29개의 도시, 천 개의 거리에서 사람들이 팽목항 방파제로 모여,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말없이 행진한 건 그런 까닭이었다. 왜 그때 아이들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지, 지금도 그들은 구천을 떠돌며 애타게 부르는데, 왜 응답하지 않는 거지? 관제사들에 대한 항의가 아니라, 응답하지 않는 이 나라, 이 권력, 책임있는 이들을 향한 항의였다. “노숙을 밥 먹듯 해야 하고, 내 자식 죽은 이유 알려달라고 150일 동안 서명 받아야 하고, 길거리에 드러누워야 하는”, 그럼에도 빈정거림만 돌아오는 이 ‘더러운’ 나라에 대한 항의였다.

대통령은 딴죽을 걸고, 여당은 버티고, 야당은 끌려다니는 속에 부도난 어음 쪼가리만도 못한 합의문이란 게 세 번이나 나왔다. 대통령 지침에 따라 따귀 빼고 기름 뺀 것이었으니, 그건 응답이 아니라 야유였다. ‘권력은 권력자의 것이며, 국가는 권력자의 전리품일 뿐. 국민은 그저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할 일이지, 왜 기웃거리고 참견하려 하는가.’

그 허울과 적반하장이 오죽했으면, 방송인 김제동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을 사랑하자, 열렬히 사랑하자! 그러면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줘야 하며, 진상규명뿐만 아니라 검경, 특별법 모두를 동원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유가족의 뜻’이라고 했던 박 대통령”이 기억을 되찾지 않을까?

국토의 서남단에서 행사가 있던 날, 국토의 동남단 부산에서는 ‘영화인 1123인 선언’이 있었다. “총 3번에 걸친 여야의 합의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번번이 뒤통수를 맞았다. 4월16일 이후 과연 무엇이 변했는가? 무엇이 밝혀졌는가?”

우리 아이들은 지금 가슴에 절망과 분노를 쌓아가고 있다. 친구들이 어처구니없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했고, 가해자인 국가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걸 지켜보고 있으니 도리가 없다. 그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 그 분노를 어찌할 건가. 집단적 복수, 사회적 보복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이제 고통 속에서 기도하는 이들의 간절한 부름에 답해야 한다. 모두가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하늘을 날도록 해야 한다. 이 땅의 관제사들은 응답하라, 제발 응답하라.